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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듣는 채식인들’의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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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육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랄까? 어릴 때부터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아와서 야채나 생선 등을 더 자주 먹는다. ‘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변에 말할 때마다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 분류로 나누어진다.

1. 고기를 안 먹어? 인생의 즐거움을 모르네~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

2. 고기를 안 먹어? 와 진짜 대단하다… 정말 힘들겠다… (박수)

세상에 고기를 안 먹다니...

세상에 고기를 안 먹다니…

표현은 좀 다르지만, 이 두 가지 반응의 뒤편에는 비슷한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건 일종의 ‘수행’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우리는 육식 위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웬만한 뒤풀이는 모두 고기가 메인 메뉴고, 미디어에서도 ‘치느님’이나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같은 말을 연발하며 육식의 즐거움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반면, 채식은 즐거움보다는 ‘인내’와 더 관련있다.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 혹은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맛 없게 챙겨 먹어야 하는 것. 그것이 채식하면 떠오르는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다.

한국에서만 '치느님'을 찬양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심슨 가족'의 한 장면.

한국에서만 ‘치느님’을 찬양하는 건 아니다. ‘심슨 가족’의 한 장면.

그래서 처음 ‘제1회 비건 크루즈 나이트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파티일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비건 음식으로 파티를 할 수 있다고? 파티란 신나게 음악을 틀어 놓고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즐거움을 한껏 누리는 곳이 아니던가. 그러한 이미지와 채식은 쉽게 연결 짓기 힘들었다. 그러다 주최 단체가 ‘Naughty Vegans’, 즉, ‘말 안 듣는 비건들’이라는 걸 보고 깨달았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채식인들을 ‘온순한 사람들’, ‘인내하는 사람들’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평생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말 안 듣는 비건들의 파티’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비건푸드, 걱정했던 그 맛이 아니야

“저는 채식하면서 가장 먹고 싶었던 게 소시지인데, 여기 오니까 소시지도 있고 핫도그도 있어서 좋아요. 지금은 채식 커리를 먹고 있는데 이것도 굉장히 맛있어요.”

– 일반 참가자 소하연 씨

파티 날, 입을 옷까지 골라놓고 점심을 먹는데 순간 걱정이 되었다. 비건푸드만 판다는데, 그렇게 종류가 다양할까? 저녁을 맛있게 먹을만한 음식들이 있을까? 내가 아는 비건푸드라고는 샐러드와 수프, 볶음밥 정도였기에 가서 무슨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에 비건 식당1)경의선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운영하던 ‘잭스빈’이라는 곳. 병아리콩을 이용한 음식을 주로 팔았다. 아쉽지만 올해 2월에 가게가 문을 닫았다.에 갔을 때 무척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파티가 열리는 크루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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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흐림-폭우-흐림’을 반복하던 날씨 때문에 행사 준비에 약간 차질도 있었지만, 다섯 시가 가까워지자 대부분의 부스가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메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했다. 과자, 케이크, 피자, 떡, 커리, 콩고기 바베큐, 핫도그, 햄버거, 어묵 등등…그 중 비건 쿠키를 파는 ‘오타쿠키’ 대표님이 한 번 맛보라고 주신 쿠키가 굉장히 맛있었다.

대표님은 쿠키를 주시며 장난스레 “이걸 먹는다고 살이 안 찌는 건 아니에요.”라고 덧붙이셨다. 실제로 정말 (흔히 표현하는)’살 찌는 맛’이었다. 달달하고 계속 손이 가는 맛. 우유나 달걀 등을 넣지 않아도 이런 쿠키를 만들 수 있구나 싶어 신기했다.

'오타쿠키'의 '비건하트' 쿠키

‘오타쿠키’의 ‘비건하트’ 쿠키

그 외에도 케이크나 피자, 떡, 햄버거, 어묵을 먹었는데(그렇다. 실은 과식했다) 담백하면서도 상당히 맛있어서 ‘채식’하면 떠오르는 ‘싱겁고 맛없음’이라는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사람이라는 이유로 합리화되는 폭력

부스를 운영하시는 분들이나, 일반 참가자 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 있었다. “어떻게 채식을 시작하게 되셨나요?”라는 질문이었는데, ‘맛있어서’라는 답도 많았지만, 동물 복지에 대한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는 답이 많았다. 그 중 일반 참가자 한 분의 대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반려동물을 키워보니까, 동물도 서운해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사람처럼 다 감정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 걸 모르고 동물을 너무 처참한 환경에서 키우고, 잔인하게 도축하는 것 같아요.”

-일반 참가자 이선용 씨

동물을 키우다 보면 '얘도 표정이 있네' 싶을 때가 있다 (출처: 마일로 님의 '극한견주')

동물을 키우다 보면 ‘얘도 표정이 있네’ 싶을 때가 있다 (출처: 마일로 작가의  ‘극한견주’)

대부분의 농장에서 동물을 좁고 지저분한 환경에서 키우다 죽여서 고기를 얻는다. 우리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동물을 다뤄 왔다.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A4지 한 장보다 작은 우리, 몸을 돌리기조차 힘든 환경, 오물로 가득 찬 울타리 안 등을 생각해 보면, 우린 너무 쉽게 동물에 대한 폭력을 합리화해 온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이렇게 비건푸드를 소비할 수도 있고, 농장을 더 동물 복지 지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있을 텐데 말이다.

최근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달걀 살충제 파동’을 언급하는 분도 많았다. 달걀 살충제 파동은 닭의 사육 환경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나치게 좁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지내는 닭은 진드기에 시달린다. 이 진드기를 없애기 위해 사람들은 점점 더 강도 높은 살충제를 사용한다. 이번 살충제 파동 뿐만 아니라,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사태의 원인도 축산 시스템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즉, 동물을 좀 더 인도적인 환경에서 키우는 것이 윤리 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난 대선 때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공약 중에 '동물복지농장 확대'가 있기도 했다 (출처: 심상정 의원 블로그)

지난 대선 때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공약 중에 ‘동물복지농장 확대’가 있기도 했다 (출처: 심상정 의원 블로그)

모두 함께 즐거운 빗속의 피크닉

“한국은 채식 하면 생활한복, 절밥 이런 게 떠오르는데, 이렇게 크루즈에 모여서 비건 파티를 하니 채식도 즐길만한 문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 봉사자 박소엽 씨

여러 이야기를 듣고 여러 음식에 눈이 팔리는 동안에도 비는 잦아들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잦아들긴 했는데, ‘어? 이제 안 내리나?’ 싶으면 곧바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날씨 때문에 사람들은 비가 그치는 듯 보이면 선상으로 나와 부스를 구경하고 강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빗발이 다시 거세지면 선실로 피했다.

선실 내부의 모습, 비건 칵테일을 팔고 있었다

선실 내부의 모습, 비건 칵테일을 팔고 있었다

이렇게 궂은 날씨 때문에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파티에는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밖에는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DJ가 음악을 틀어놓은 선실 안에서 즐겁게 몸을 흔들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다들 젖어 있었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파티 시작부터 밤 10시까지 쭉 계속되었던 디제잉

파티 시작부터 밤 10시까지 쭉 계속되었던 디제잉

선상이나 선실 어디서든 각자 사온 음식을 들고 맛있게 먹으며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 모두 함께 거대한 피크닉을 벌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잇대, 성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랬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장소의 특성 때문에 장애인들은 파티에 참석하기 어려웠고, 미성년자도 들어올 수 없었다. 동물권을 생각한다는 의미가 있는 행사지만 역설적으로 반려동물은 출입이 불가능했다. 기획단은 파티 하루 전 날 이에 대해 사과문을 올렸다. 크루즈에는 장애인이 출입하기 힘들다거나, 파티에서 술을 판매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미성년자는 혼자 입장할 수 없다는 것, 사고 위험 때문에 반려동물이 크루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 모두 기획 과정에서 간과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행사에서는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

가수 故신해철의 ‘재즈 카페’라는 노래 가사에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어느 틈에 우리를 둘러싼 우리에게서 오지 않은 것들, 우린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

이 가사처럼, 나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들은 주변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특히 내가 입고 먹고 마시는 것들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입고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가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는지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채식을 하는 것 역시도 ‘육식과는 다른 풍미, 동물에게 더 인도적으로 대하는 것, 건강에 더 좋음’ 등 여러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나의 삶에도 이러한 의미가 더해지면 어떨까? 어쩌면 즐거우면서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빗속에서도 크루즈를 떠나지 않고 즐거워하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육식이 맛있으니까 최고야! 채식은 맛 없어!’에서 벗어나, ‘입고 먹고 마시는 것’을 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집에 가는 길, 신나고 배부르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동안 내가 ‘먹는 것’을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되었다.

'종자 살리기 운동'과 채식주의를 결합시킨 '가배울'

‘종자 살리기 운동’과 채식주의를 결합시킨 ‘가배울’

 

글 / 린
사진 / 린,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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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의선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운영하던 ‘잭스빈’이라는 곳. 병아리콩을 이용한 음식을 주로 팔았다. 아쉽지만 올해 2월에 가게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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