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만진거 아니에용…ㅋㅋㅋ’ 이 말은 tvN<SNL> 소속 개그맨 이세영씨가 아이돌 성추행 의혹을 받았을 때 <SNL> 공식 페이스북의 첫 반응이다. 그리고 이는 이세영씨가 경찰 조사에서 성추행 무혐의 결론을 받으며 현실이 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SNL>측과 이세영씨의 논란 대응 방식에 크게 실망했고, 이세영씨의 프로그램 하차는 불가피했다.
그리고 얼마 전, <SNL>은 3월에 런칭할 시즌9에 이세영씨의 재합류 결정을 밝혔다. 엄앵란 가슴 비하로 거센 비난을 받은 개그맨 정이랑씨도 계속 합류한다. 이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감을 고려할 때, 이번 시즌은 전화위복이냐 그 반대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타이밍이다. 물론 이를 가장 절감하는 쪽은 제작진일 것이다. 그럼에도 노파심에 <SNL>측에 시청자로서의 바람, 특히 프로그램의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섹시 코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1.성폭력, 비하 논란 정면 돌파하기
통상 <SNL>은 각종 논란이나 스캔들이 터진 연예인 게스트에게 ‘자학 개그’로 승화할 기회를 마련해줬다. 따라서 <SNL>의 첫 방송도 자사 프로그램 또는 이세영, 정이랑에 대한 강도 높은 자학개그를 준비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SNL>은 그동안 게스트들의 ‘자학개그’가 충분한 반성 기간이나 정확한 해명 없이 남발돼 ‘스캔들 면죄부’라고 지적받았다. 따라서 이전 시즌 논란에 대한 자학개그도 신중해야 한다. 다시 말해 ‘희화화’가 아닌 ‘풍자’의 방식이어야 한다. ‘희화화’로서의 자학개그는 논란을 무마하려고 웃음으로 불쾌함을 덮는 것이라면, ‘풍자’로서의 자학개그는 불쾌함을 웃음의 방식으로 한번 더 꼬집는 것이다. ‘진짜로 만진거 아니에용…ㅋㅋㅋ’처럼 그저 ‘짓궂게’, ‘긴장을 풀려고’ 식의 태도로 논란을 희화화한다면 시청자들은 금세 간파할 것이다.
또 풍자가 성공하더라도, 1회성 에피소드만으로는 불충분하다. <SNL>은 그동안 이세영, 정이랑이 아니더라도 경솔한 19금 소재 활용으로 크고 작은 비난을 받았었다.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신에 확실한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반 성폭력’을 다루는 장기 코너가 필요하다. 지난 시즌 ‘단톡방 성희롱범’ 몬스터를 잡는 설정인 ‘폭행몬 GO’코너도 좋은 기획이었다. 이 기획을 강화해 19금 예능의 대표 주자로서 성숙한 성 의식을 증명해야 논란이 사라질 것이다.
2.섹시 코드 대신 ‘섹시 풍자’ 연출
많은 사람들이 <SNL> ‘섹시 코드’의 선정성을 지적한다. 하지만 ‘섹시 코드’가 아닌 ‘섹시 풍자’라서 문제다. 섹시 코드는 ‘병맛’, 섹시 풍자는 ‘콩트’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병맛은 맥락 없는 사건이나 결론으로 웃음을 주는 코드인데, 최근 <SNL>의 섹시 코드는 맥락 없이 가슴골이나 섹시한 몸짓을 등장시키는 ‘병맛’ 투성이었다. 병맛은 잠깐의 웃음과 자극을 주고 휘발돼 콘텐츠 질을 떨어트린다. 게다가 병맛 섹시 코드에 신동엽이 만능키로 쓰이는 것도 문제다. 현아, 전효성처럼 젊고 예쁜 여성의 몸을 밝히는 음흉한 아저씨 역할로 우스꽝스러움을 연출해 쉬운 웃음을 유발한다.
물론 젊고 예쁜 여성에 대한 욕망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어긋나는 성적 욕망’은 19금 예능의 핵심 구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저씨, 또는 못생기거나 나이든 여성이 부담스럽거나 찌질하게 욕망하는 모습’으로 정형화되는 것이 문제다. 어긋나는 욕망의 모습과 주체가 다양화돼야 재미가 산다.
초창기 <SNL>의 인기를 주도했던 코너 ‘쨕’이 좋은 사례다. ‘쨕’은 재소자들끼리 짝을 만드는 설정의 코너였다. 여자들은 미저리/특수강간/불륜으로, 남자들은 바바리맨·상습탈옥/불법도박 등의 죄목이었는데, 각 죄목에 어울리는 욕망에 따라 원하는 짝이 달라지고, 욕망이 엇갈리는 연출(집착전문 미저리가 상습탈옥범 구속하기 등)로 재미를 줬다. 또 최근 ‘3분 남친·여친 시리즈’는 이상형을 만났지만 바라던 모습이 극단적이어서(나를 돋보이는 애인인줄 알았는데 거지분장으로 과하게 돋보여주는 등) 좌절한다는 설정으로 웃음을 줬다.
3.독 무섭다고 술 못 먹으랴
<SNL>의 섹시 코드는 대중의 많은 주목과 거센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다. 또 수위가 약해졌다거나, 선정성이 심하다는 양극단의 비판을 받고 있다. 민진기 <SNL> PD도 한 인터뷰에서 섹시 코드를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독 무섭다고 술 못 먹으랴. <SNL>의 제작진과 출연진이라면 충분히 안전하고 풍미 좋은 19금 콘텐츠를 만들 역량이 있을 것이다.
19금 예능의 양대 산맥이었던 <마녀사냥>도 폐지한 만큼, 오히려 새 시즌이 <SNL>의 섹시 코미디가 독보적일 수 있는 기회다. 무척 기대된다. 특히 신동엽의 발ㄱ, 아니 기발한 섹드립을 더 많이 보고 싶다.
교정 및 편집 / 저년이
글 / 도우리